파문이 이는 세상에서 붉은 자국을 바라보다 고개를 들어올린다. 재수없게도 눈 밑에 떨어진 차가운 물방울에 인상을 찌푸렸다.
흐린 하늘. 무더운 여름의 사이에 길고 지루한 장마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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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륵, 멈춰있던 물방울이 다른 물방울에 맞아 빠르게 떨어지는 것을 바라봤다. 시야에서 사라진 물방울을 좇다 이내 잔뜩 얼룩진 창문 너머로 초점을 맞춘다. 언뜻 눈이 마주친 듯도 하다. 날이 흐리다. 마음에 비가 내린다.
지독한 장마의 빗물은 마음에서 흘러 넘쳐 발끝을 전부 적시고도 머리끝까지 차오른다. 숨을 쉴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범람한 어둠속에 눈을 뜬다. 비로소 호흡이 덧없는 과거의 습관임을 깨닫는다. 너도 장마의 거센 빗줄기에 잠겨 그리 되겠지. 수많은 나뭇잎과 꽃잎은 장마를 맞아 잎을 떨구거나 목이 꺾여 떨어진다. 마지막도 그 무엇도 아닌 것들이 바닥에 떨어진다. 너도 그리 마지막이 되지 못한 채 떨어져, 내린 빗물에 숨 못 쉴까?
또 다른 낙落의 계절. 하염없이 떨어지는 것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퍽이나 감상적인 사념들이 머릿속을 부유한다. 먼지라도 되는 것 마냥 손을 한 번 휘저어 생각을 흐트러뜨리고는 중얼거렸다. 장마 만큼이나 길고 끈질긴 인연이로구나. 소매가 다 젖어버렸잖아.
시간마저 죽어가던 장마. 누군가 못내 접지 못한 검은색 학 한 마리를 대신 접어 서랍에 넣는다.
장마의 한 가운데에 놓인, 장마의 병실.
장마가 끝나간다. 이제 그만 울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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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화, 장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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