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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류3 류는 기본적으로 사람이란 기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해왔다. 감정이고 뭐고 복잡한 건 모르겠고, 그는 아무튼 그렇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러한 당혹스러운 상황만 오지 않았다면! 아마 죽을때까지 그러한 주제로 깊이 고민할 날은 오지 않았을테지. 제 앞에는 두 명의 연인이 있다. 양다리가 아니고, 정말 같은 천사가 둘이 있다고. 눈을 비벼 봐도, 목소리를 들어봐도. 인상을 쓰고 노려봐도 다를 바가 없다. 이럴 리 없다며 여느 동화같이 옷이라도 벗겨보려 했지만 평소보다 하나 더 늘어난 싸늘한 눈길에 조용히 손을 내렸다. - 애인이 둘인 것은 몹시 골치아프다. 나는 단 한 명의 사랑과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싶은데, 왠걸. 공평하게 시간을 나누면 내 추억도 둘로 나뉘고, 그렇다고 모든 순간을 셋이 함께할 수 있을.. 2020. 12. 4.
생즉사 사즉생ㅋㄱㅋㅋ 우리는 죽음으로 만나고 삶으로써 헤어진다. 망자를 인도하는 저승차사 유한성有限性. 그는 본디 매몰차지 못한 성격으로, 수많은 죽은 이들에게 정을 베풀어왔다. 그들은 유한한 삶을 살고 있으며 그 끝을 두려워 하기에... 그러나 연이란 무엇인가? 무엇이기에 무한한 내가 그들의 유한함을 이토록 두려워 하게 만드는가? 이야기가 적힌 수많은 책을 들고 있노라면 그는 때때로 그 무게를 견딜 수 없어 주저앉는다. 연의 붉은 실은 겹치면 겹칠수를 그를 옭아매므로 어느 순간부터 실들이 목이 조여온다. 피가 베어나와서야 붉게 물든 실을 풀어내더라도 깊은 상처가 아문 자리에 흉터가 남는다. 유한성은 돌맹이 하나를 집고자 손을 뻗었으나, 결국 의미없는 일이었다. 손에 쥔 것은 허공 뿐이다. 오랜 시간 겪어온 일에도 그는 무감.. 2020. 6. 27.
장마 파문이 이는 세상에서 붉은 자국을 바라보다 고개를 들어올린다. 재수없게도 눈 밑에 떨어진 차가운 물방울에 인상을 찌푸렸다. 흐린 하늘. 무더운 여름의 사이에 길고 지루한 장마가 찾아왔다. - 주륵, 멈춰있던 물방울이 다른 물방울에 맞아 빠르게 떨어지는 것을 바라봤다. 시야에서 사라진 물방울을 좇다 이내 잔뜩 얼룩진 창문 너머로 초점을 맞춘다. 언뜻 눈이 마주친 듯도 하다. 날이 흐리다. 마음에 비가 내린다. 지독한 장마의 빗물은 마음에서 흘러 넘쳐 발끝을 전부 적시고도 머리끝까지 차오른다. 숨을 쉴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범람한 어둠속에 눈을 뜬다. 비로소 호흡이 덧없는 과거의 습관임을 깨닫는다. 너도 장마의 거센 빗줄기에 잠겨 그리 되겠지. 수많은 나뭇잎과 꽃잎은 장마를 맞아 잎을 떨구거나 목이 꺾여 .. 2020. 6. 25.
로즈류2 https://www.youtube.com/watch?v=ru-O5L2uxho&t=7097syoutu.be/ru-O5L2uxho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 나라로 구름 나라 지나선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추이는 건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 비. 재수가 없으려나. 하필 오늘… 아니, 아니지. 오늘이기에 내리는 비겠지. 그리 한숨섞어 중얼거리고는 토독 토독 빗방울이 나뭇잎 위에 떨어지며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착잡하군. 이대로면 성 첨탑을 보기도 전에 저체온증으로 죽겠어. 질척해진 땅바닥에 새겨지는 발자국을 따라 점점이 붉은 자국이 퍼졌다. 비 때문인지 피 때문인지 축축해진 붕대를 다시금 동여맸다. 죽으면 안되지. 이제야 그 순간이 다가오는데 이렇게 죽어버리면 안되지. 그는 다짐하듯 속삭이며.. 2020. 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