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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캐

킴싘

by 참마도 2020. 7. 14.
룬 I. 시그니티는 제가 보편적인 사람들 보다는 다분히 이성적이라 생각하였고, 그 생각과 별 다르지 않게 소모적이거나 의미없는 일은 잘 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틀린 속내의 한켠에는 악질적이고 유아적인 면모가 자리잡고 있었기에 입바른 말로도 유치한 장난질을 결코 한 적이 없다고는 못 하겠군.

그래, 솔직히 말해 누군가를 골리는 건 아주 재미있다. 제 손 안에서 놀아나는 꼴이란!

빗물과는 이질적인 온도의 물방울이 둔탁하게 피부에 부딪혀 흐르는 감각에 속눈썹이 잘게 떨렸다. 평소라면 빤히 보이는 변화에 눈치 챌 법도 하건만. 아니, 그보다 이르게 깨달았어야 옳았을 터인데... . 그보다 헤스터. 설마 지금 네가 울고 있는 것인가?

누군가를 위해 눈물을 흘린 적이 언제였지. 흘러내려 턱에 매달린 눈물 방울이 거슬려 얕은 회상에 잠겨 있던 그는 분명히 들려온 제 이름에 여태껏 웃음과 동반한 인내는 집어치우고 눈을 떴다. 제 이름이 불렸다고 상대의 이름을 마주 불러주는 낭만 따위는 없었으나, 네 품에 안긴 채로 조용히 손을 들어올려 장례라도 치르는 것 마냥 우는 이의 얼굴에 힘겹게 흐르는 눈물을 손끝으로 훔쳤다. 시그니티는 여전히 도둑이므로 갖지 못한 눈물마저 훔치고자.

그제서야 저를 바라보는 눈동자를 보석같이 무정한 빛이 도는 자색 눈동자로 응시하며, 오만한 시그니티는 입 안에 고인 자조적인 의문을 속으로 읊조렸다.

차라리 내가 정말 죽었더라면, 영영 눈을 뜨지 못한다면 말이다. 이 상황이 조금 더 재미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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